오늘 아침에 대통령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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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다 국가가 강하고, 국민보다 국가에 돈이 많은 나라가 살아 남는다.
사람들은 내가 마치 과거 군사정부시대의 발상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 시절 내가 건설업에서 경험한 것들이 지금 상황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 때 쌓아 놓은 중동 인맥이 지금 현찰로 돌아오는 것이 몇 개 있기는 하나, 우리가 지금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지금 80년대 보다 더 80년대 같은 21세기를 사는 중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 때 보다 더 지독하다. '금융'의 힘 때문이다.
이럴 때는, 밀도높은 정부가 운영하는 실속있고 강한 실용적 국가만이 살아 남는다.
국민보다 국가가 강하고, 국민보다 국가에 돈이 더 많아야 하는 것은 그가 그 위에서 군림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 싼 모든 주변세력들이 지금 그런 발상을 갖고 국가를 운영중이다.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 그리고 조금 있으면 러시아까지 가세할 것이다. 금융과 제조 모두 철저하게 포위한체 그들은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다. 우리가 그들보다 강한 것은, 대한민국은 이미 민주주의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바탕 위에서 사회적 동요 없이 저들과 맞장 뜰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엔 풀리지 않은 돈 800조가 있고, 그 자본들을 내가 잘 안다.
복지도 좋고, 사회보장제도도 좋지만 나라가 망하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4대강 사업이라도 없으면, 이제 곧 줄줄이 해고되어 나갈 제조업 근로자들은 어디서 일감을 찾을 것인가?
내가 지금 대통령인 것은, 天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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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뭐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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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 2010/02/1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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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목 시계.
난 오랫동안 시계 없이 살았다. 핸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머니에 이것저것 넣어 다니기 싫어해서 꼭 핸드백이나 작은 어깨가방이라도 꼭 메고 다니는 나로서는 시간 확인을 위해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는 것 보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적성에 맞는다. 그럼에도 왜 그동안 시계 없이 살았으냐 하면, 내 일상이란 것이 늘 5분 생활권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로는 집을 중심으로 학교, 유아원, 슈퍼마켓 정도가 전부다. 대부분 학교에 있으면서 시간을 알아야 할 때면, 윈도우 오른쪽 아래를 슬쩍 한 번 보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 내게 따로 시계가 필요할 리 없었다.
취직한 이후부터, 시간 배분 자체가 하루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자 손목시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지난 한국 출장 때 동생이 멋들어지는 것으로 하나 장만해 주었으나, 그 시계는 옷차림이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 차고 갈 요량으로 잘 모셔두었고, 실용적으로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군용시계다. 까만색에 초와 분 눈금과 분침 시침까지 모두 흰색인데 초침만 강렬한 주황색이다. 얇고 날카롭게 원주방향으로 쭉 뻗은 초침이 눈금을 정확하게 훑고 지나가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베터리 없이 매일 밥을 먹여야 하는 것도 꽤 마음에 든다.
어느 일요일 아침 9시 무렵 지갑없이 조깅하며 여기저기 가판이 차려지고 있던 벼룩시장을 통과하다 우연히 발견한 시계였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 보았더니 30유로라고 했다. 미사를 마치고 오후 두 시 무렵 다시 찾아가, 구입 의사를 밝힌 후 은근히 아침에 이 시계 얼마라고 그랬냐고 다시 물어 보았더니 35유로라고 그랬단다. 슬쩍 웃음이 나왔지만 모르는 척 하고, 그럼 30유로에 파는 것은 어떠냐고 흥정을 걸었더니 아주 흔쾌히 오른손을 휙 내어 저으며 오케이! 하는 것이다. 기분좋게 시계를 건내 받아 차고, 벼룩시장 한 가운데 설치된 간이 매점에서 따듯한 코코아를 한 병 사다가 일부러 그 장사치를 다시 찾아가 건내 주었다. 그는, 아주 기뻐하며 고맙다고 받아 들었다.
난, 그 사람처럼 시계를 모아 (비록 무슨 작물일지도 모르지만!) 그 추운 겨울 아침에 새벽부터 가판을 차려 놓고 장사할 줄 모른다. 따듯한 옷을 입고 따듯한 성당에서 따듯한 신부님 강론을 듣고 따듯한 성가를 부르고 따듯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그 사람을 찾아 갔을 때도 그는 어디 한 곳 발이라도 녹일 만 한 데가 없는 그 빙판위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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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 2010/02/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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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레아즈에서 뜨거운 주제로 회자되었던 "WEB2.0 이란 무엇인가?"를 기억하십니까? 민주주의2.0이라는 용어가 선명하게 전달해 주는 뉘앙스에 따르자면, 그것은 역시 소통으로 압축해 저는 받아 들여 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웹2.0을 이야기하기 전부터 사실 RIA (Rich Internet Application) 이라는 개념이 전개되어 왔었더군요. 웹2.0은 말하자면 RIA 혹은 X-Internet 진화를 개념적으로 표현한 정의 정도로 볼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개념을 곤고히 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IT+X 라면서 X 속에다 기존 공업분야를 대입해 보았자 상황은 진척되지 못하고 결과는 늘 지지부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과중한 스트레스를, 돈 대는 사람들에겐 밑빠진 독에 물 붇는 심정을 줄 뿐이죠.
"사용자 중심의 환경"이란 말을 공업계에선 "주문자 중심의 환경"이란 구문으로 대체할 수 있어 보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고객 우선주의"라는 기존의 개념과는 그 근본적 발상이 다른 것으로 가히 패러다임 전환급 혁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
"시대 문화는 시대의 요구에 의해 발생하나, 다시 그 시대를 이끈다."
그 시대에 속하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야 마는 이 놀라운 현상이, 왜 그렇게 되는지 제겐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으나, 이걸 모르면 분명히 뒤쳐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홈페이지 하나 만들면서 무슨 말이 이리도 많은고!!! 하는 소리는 곧
예술이란 밥 팔아서 똥 사먹는 짓!!! 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겠습니다.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이 놀라운 용어를 사용한 논문으로 박사학위 딴 그 사람 이름이 뭐였죠? 20세기가 21세기로 녹아 들어가는 한 가운데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연일 놀라고 놀랍니다.
변화의 규모와 에너지로 보았을 때, 지난 세기같았으면 이러한 스트레스는 반드시 대규모 충돌과 분쟁으로 분출되었을 텐데, 21세기는 가상의 세계가 그 충격 자체를 흡수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핵심은, 가상계와 현상계 사이의 가역적 통로, 즉 소통로가 되겠고, 그 기술과 효율이 현재를 포함한 당분간의 미래를 구성해 나가겠군요.
사랑과 현실을 구분해 내는 능력이 아니라 그 둘 사이를 유연하게 왕래할 수 있는 소통기술을 가진 자가 차세대 선수가 되겠습니다 그려.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자체가 무의미해지겠어요. 하하하하하하. (이상하게 통쾌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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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 2010/01/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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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안정애착남 5세 될 박건우]
며칠 전, 그러니까 약 2주 쯤 전에, 갑자기 마눌님께서 나를 극진하게 대해 주던 대략 이틀정도가 있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한 내가, "니 갑자기 나한테 와이라노...." 그랬더니 "제가 원래 그러잖아요...호호호."
"이쌍하네....갑자기 왜 이러지...."
약 2주가 지난 오늘, 내 물음에 대한 변이 있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자기는 다른 남자랑 결혼하여,
통장에 적어도 10억은 넣어 놓았을 것이며,
크고 검은 차에서 내려 명품 가방을 꺼내 들 것이었다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그와 반대로 네 인생이 벌써 아작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그녀는 그야 말로 자타공인 1등 신부감이었으므로 위와같은 아내의 추측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래서 10억이 아니라 100억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임새를 넣어 주고 그랬다.
아무튼 그런데,
지금은 나와 결혼해서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을 문득 돌아 보니, 자기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 있더란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자존감을 상실해 가는 삶과 채워가는 삶의 차이를 서른 중반에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다 오빠 덕분이란다.
그 모든 난관을 뚫고, 아내는 올 해 독일 디플롬 학위를 취득하게 될 것이다.
오늘 나는, 밥 먹다가 울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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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비가 하나 더 남았는데,,,
거 참, 이젠 더 이상 나 혼자는 못하겠다 싶었고,
비록 저 산을 넘지 못하고 쓰러져 죽는다 하더라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노라 떳떳해 하며 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던 중이었다.
A형 여자는 이렇게 가끔씩 B형 남자를 움직이고,
B형 남자는, A형 여자를 위해 한 번 마음 먹은 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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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 2010/01/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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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로 넘어 오면서 슬슬 성형수술의 붐이 일고 있을 때, 순간 머리가 지끈해지면서 아차 싶었던 것이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성주의 세력의 여성성 왜곡 음모"가 바로 그것이다.
성형수술 바람은, 얼짱풍조가 먼저 세간에 회자되며 인터넷계에 외모지상주의를 먼저 깔아 놓은 후 유유히 등장한 문명말기적 대중문화(?)가 되었다. 무감각해진 인간들의 천진난만한 희열 앞에 가끔 섬찟함이 느껴진다. 혹시, 내 안의 절반은 이미 미쳐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21세기 대한민국의 참된 내부 성장동력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여성'.
김대중-노무현 시대가 지나면 적어도 국회의 약 10%는 여성의원으로 채워 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진 여성의 폐허를 딛고 서서, 얼굴에 칼집먹은 여아들이 궁둥이 씰룩이며 "오빠 우린 어리지 않아요. 절 가지세요, 제발~".
위에,
원더걸스가 미국 어느 유명해 보이는 토크쇼에 나와 한 판 놀고 들어가는 동영상이 있다.
노래 내내 유지하던 그 도도함은, 노래가 끝난 후 골리앗같은 앵커가 다가오는 순간 모두 휘발되어 사라지고, 익숙하지 않은 영어 앞에서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기특한 뉴커머가 되었다. 암탉 앞으로 모여드는 새끼 병아리들 같다.
그래.
애들이 뭔 죄가 있겠어.
내 스무살 무렵부터 들어 왔던 한국의 구조적 모순, 근 이십 년이 지나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에 그 견고함은 극에 달했고, 하느님이 이 땅을 여전히 보우하신다면, 아마 걔들이 패러다임인지도 몰라.
(소녀시대 두번째 앨범 오!가 나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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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 2010/01/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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