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고, 그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국가 수반에 옳려 놓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포괄적(노무현 서거 정국에 배운 개념) 노예 근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성토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들을 "어리석은 백성"으로 몰아 가며, 결국 자기 밥그릇에 밥을 채워 주지 않을 사람을 선출한 것에 대해 가차없이 신경질 부리는 것이다. 이것은 왕정이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아이러니인 듯 하다. 어리석은 백성이란 왕정 시대에 위정자들이 엘리트주의를 합리화 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말인데, 민주시대를 표방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정치인들이 국민대중을 향해 어리석다고 말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 되었다. 민심은 곧 표심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노무현의 남자 유시민의 입에서는 꼭 어리석다는 표현은 없었지만 제대로 모르는 국민들에의해 조성된 여론을 민심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백성이란 소리가 이제 그 백성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어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현상이 일어나 순간 공허해진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들이 바라는 수준으로 깨어나면 세상이 합리적인 사람들에 의해 제대로 돌아 갈 것이라는 꿈을 꾸는 것이다.

맞다.
맞는데, 그 생각이 그다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 오래된 생각이 곧 익히 들어 온 민본주의(아테나발 민주주의 반상회 따위와는 애초에 격이 다른)라는 것이며, 그 민본주의의 주체가 합리적이지 않은 바로 그 어리석은 백성이다.

대중의 지향점은 순결도 아니요 타락도 아니다. 절대 합리도 아니고 절대 무지도 아니다.
대중의 지향점은 그저 '삶'이다. 그래서 민본주의의 핵심도 나는 결국 '삶'이라고 생각한다.
삶도 세분하면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겠지만, 일단 그 삶이라는 말이 갖는 무게 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이 왜 삶이라 불리느냐 하면, 그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그리고 삶, 참 아름다운 우리말임과 동시에 동양철학의 극치를 보여 주는 표현법이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사랑이다. 우리 말에서 사람과 삶 그리고 사랑은 같은 발음대에서 전 부 한 끝 차이로 구분되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민본주의의 바탕엔 사람,삶 그리고 그 삶사람 혹은 사람삶에 대한 애정, 즉 사랑이 있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가 사상에 예속되지 않은 위정자이거나, 선지적 계몽주의자이거나 혹은 한국 사회의 개혁 필요성을 깨달은 노빠들이거나 할 것 없이 민주주의 세상에, 그리고 노무현이 갈아 놓은 표현의 자유라는 텃밭 위에서 한 껏 어리석은 백성들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진정 힘을 얻고 생산적 대안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그들의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진지한 애정이 필요하다. 사랑이 없으면, 심오한 진리 전하는 말도 그저 울리는 징소리와 같다지 않은가.

깨어나려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사고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간파하기 위해 필요한 그 삼박자는, 토비콤 알약이나 d(-_-)b 고성능 헤드셋이나 혹은 잘 설명된 논리학 강으로 갖춰지지 않는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털끝만한 도움 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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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예술에 있다."
는 생각을 어제 돌아 오는 길에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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